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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의 의로운 항명 의로운 항명에 대한 논의 군대는 상명하복의 기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윤리적 기준과 저촉되는 불의한 명령을 상관으로부터 받았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일까? 부당하게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광주의 민주시위 항쟁자들을 공산당의 국가전복 불순세력으로 정의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살상명령을 내렸다. 군대는 국가원수의 명령을 따라야 하고 복종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민간에 대해 발포명령에 따라 살상행위에 복종한 군인들의 행동은 후에 일정한 수준의 심판이 있었지만 많은 세월이 지난 뒤였다. 1. 군인의 상명하복 군인의 상명하복은 군대의 명령 체계에서 상관의 명령에 하관이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상명하복은 군대의 효율적인 운영과 전투력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상명하복이 .. 2023. 8. 11.
독서경영 준오혜어 강윤선 대표님을 소개합니다. JUNO 헤어의 대표 강윤선 대표님에 관한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검색을 해보게 되니 이미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셨습니다. 부자학 연구학자인 서울여대의 한동철 교수가 정의는 부자는 특정 액수의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알고 즐기는 사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엄격한? 기준에 따라 진정한 참 부자로 꼽은 분이 이건희 회장이나 현대 기 아차 회장도 아닌 준오혜어 대표이신 강윤선 대표였습니다. 이분의 경영 철학이나 독서경영등에 대하여 기사 글들을 읽다 보니 이런 분이야 말로 본 블로그가 추천할 만한 굳피플에 손색없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강윤선 대표님의 기사 글들을 스크랩하고 .. 2013. 9. 2.
짐로저스 아저씨의 경제 위기 경고 chaos를 즉시 대비하라 나비넥타이로 유머를 나누려는 맘씨가 엿보입니다. 짐 로저스( 1942년출생 )의 중대한 경고를 짧게 다루려고 합니다. 짐로저스 할아버지는 조지소로스가 스카우트 해온 야망의 금융인으로 퀀텀펀드를 시작하여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이 1969년 부터 10년간 4200%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리면서 37세의 나이에 더이상 일하지 않고 먹고 살만큼의 큰 돈을 벌고 국제 금융시장의 인디애너존스 명성을 얻어 월스트리트의 전설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앨러배머 시골 촌 사람인 그가 예일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에서 학업을 마친뒤 27세의 나이에 금융인으로 조지 소로스에게 픽업되어 월스트리트의 전설이 되고 말았는데 어찌보면 그의 인생은 참 멋져보입니다. 1990년 평생의 꿈이라던 세계일주를 시작하여 (50세 무렵) 오토바이로.. 2013. 7. 2.
명문 부자 노블리스 오블리제 한국형 모델 이회영 선생님 행복한 부자란 어떤 부자일까요? 부자 이상의 진정한 부자를 보고싶어하는 세상 사람들의 소박한 기대가 있습니다. 왜냐구요? 최부자와 같이 덕이 있고 존경받는 부자가 너무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장차 내가 가고 싶은 어떤 길의 모델을 찾고 싶어하기 때문일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선 참 찾기 어렵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한국에서도 점차 확산되어져서 성숙한 선진의식의 성장을 보여주길 고대하고 있고 그리고 그런시대에 살아보길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워렌 버핏의 모습) 한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 , 높은 도덕적 기준 , 교양과 문화수준을 엿볼 수 있는 여러 모습 중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표현되는 것이 잇습니다.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진정한 부자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한국에는.. 2013. 6. 23.
매킨지 회장 도미니크 바튼 아프리카 선교사의 아들 매킨지 회장 도미니크 바튼(51세)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 한국이었다고 말했다합니다. 34세 시절 컨설턴트로서 어떤 야망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커리어 경력을 위해 한국은 아니다라고 할 때 다이나믹한 나라로 날아가고자 결정하였니 그 선택 자체부터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 한국이라고 하니 그 표현 자체가 괜실히 우쭐해지는 맘이 들어서 혹하여 기사를 들여다보았더니 한국인으로서 우쭐할 만한 내용이 가득할 줄 알았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그냥 변화의 중심으로 가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70년대 80년대도 아니고 90년대 중반이 된 96년에 온것입니다. 청년 박태준이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대통령의 미션을 완수하고 그 보고를 올리는 장면은 대한 민국 근대사 의 명.. 2013. 3. 30.
김종훈 미래창조부 장관의 행복의 비결 오늘 뭔가를 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산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게 행복의 비결이다.” 김종훈 미래창조부 장관의 삶은 감동을 준다. 6년 전인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번 대선 경선시절부터 이미 이분을 영입하기로 생각하고 만남을 시작했었다고 한다. 그때는 경선부터 패배했었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처음 만났던 김종훈 장관 내정자의 마음은 어떠했었을까? 조국을 위해 기여하고자 처음 자기가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한국 대기업을 찾았다가 거절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제 국가적 결정권을 가지고 국가에 기여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 기회를 준다했던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6년이 지난 뒤 정말로.. 2013.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