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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Good People

명문 부자 노블리스 오블리제 한국형 모델 이회영 선생님

by 행복은행 문지기 2013. 6. 23.

행복한 부자란    어떤   부자일까요? 

 

 

 

<  이름 없는  영웅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님 >

 

 

 

   부자  이상의 진정한  부자를   보고싶어하는    세상 사람들의   소박한  기대가 있습니다.   왜냐구요?   최부자와 같이  덕이 있고 존경받는 부자가  너무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장차  내가  가고 싶은  어떤 길의 모델을  찾고 싶어하기 때문일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선  참  찾기 어렵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한국에서도   점차   확산되어져서  성숙한  선진의식의 성장을   보여주길  고대하고 있고  그리고 그런시대에 살아보길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워렌 버핏의 모습)

 

   한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 ,  높은  도덕적 기준 , 교양과    문화수준을  엿볼 수 있는    여러  모습  중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표현되는   것이 잇습니다.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진정한 부자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한국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기사화되거나  자주 언급될 만한    사회적  샘플들이    너무  적게 

발견?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 속에서   만난  이 회영 선생님과  그 가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저력에   대한   가슴뜨거운   자부심을   주는 감동이  있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도 자부심 가질 만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역사가 있다는  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백사 이항복을 비롯한  재상 11명을  배출한    조선최고의 명문가문에   우당 이회영 선생님이 계십니다.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로   쓰러져가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분연히 일어나  독립운동에 투신한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명문가의 6형제들이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일제국주의의  큰 세류에  잘  적응? 하여   얼마든지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6형제는  애국의 길을 자문하며   국권을  찾기 위해   각자의 재산을  처분하여   온 가족 60여명의 식솔을 데리고   북간도로  이주를 합니다.     당시  재산을 급히 처분하느라  제값을  받지 못하고  헐값으로  받은  돈이  현재가치로 600억에서 1000억에 육박한다 추정하니   가난한 나라였던  조선의  국가 경제 수준으로 볼 때   그  부의 규모는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시대에 야합해서  부를 불려나갔으면   해방무렵  현재가치로 수조원 가까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들이  북간도로 넘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교육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주에서   그들은 가산을 소진하며  그 가족들은  강냉이 죽으로 하루 하루 끼니를 때우면서까지   전 재산을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교육사업과    독립운동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훗날  만주에서 활동하던 모든 독립운동단체에는  이 회영이 건립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활약했으며  이 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핵심적인 전술 전략의 역할을  담당했다 합니다.  

 

 

 

 

한편,    한해 한해가 갈 수록   가진 재산은 바닥을 드러내게 되어   한개인의 거의 모든 재산을   다  쓰고   마침내는  임신한 부인을 조선으로 가는 열차에  태워보내야 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일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던   이석영은   훗날  만주에서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이회영은 점점  궁핍해지는  삶 속에서 퉁소를 불며  마음을 달래고 난을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44세에  망명한  이회영  선생은  생애 마지막 독립운동을  만주로 옮겨서  결사항전할 계획이었으나  밀고로 인하여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안중근  의사가 돌아가신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향년 66세.    실제로   해방후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은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하나 둘씩 숨져갔고    북간도로  이주했던   전 가족  60여 명중  광복후  돌아온 인원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하니  희생이  컸습니다.   우당의 시신이  고국에 한 줌의 뼈로 돌아왔을 때  부인 이은숙이 품에 안은 6세의  다섯째 아들이  이종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의 부친인 이규동이었습니다.

 

과거 국정원 장을  지낸 이종찬씨와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걸 의원이 이회영의 손자라고 합니다. 이회영의 종교는  기독교 감리교였다 합니다.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일본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안중근만큼, 주시경 선생이나 윤봉길 선생 만큼   알려져 잇지는 않았지만    이름없이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 을 했던  그.      북경을 찾는  누구에게나  얼마간 의지할  수 있는  그늘 넓은

정자나무 같은  사람으로  통했던   진정한  부자였던   이 회영 선생님은  독립운동 중   비통한 죽음으로   많은 눈물을   뿌리게 했지만    그 눈물은  대한민국의  축복의 씨앗으로 승화되어   역사를 수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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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영  ,  내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   서평 인용>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어두운 시대의 빛이 된 독립운동가 이회영 이야기

역사를 보는 눈, 사회를 읽는 눈을 틔우는 봄나무 사람책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 [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가 출간되었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말고도 존경할 만한 인물 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등을 집필해 온 작가 김은식이 이번에는 우당 이회영의 삶을 재구성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작가는 그간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생생한 삶의 순간들을 포착해 왔다. 그런 노련함과 치밀함으로 빚어 낸 이회영 이야기가 우리 앞에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이회영이 만주 대련 항에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순국했다는 내용의 전보를 받은 독립운동가들의 통곡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 명문가에서 태어나 모자를 것 없었던 이회영이 어떻게 백성의 고통과 마주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고민했고 행동했는지, 그의 일생을 촘촘하게 복원해 낸다. [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그 파란만장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아 온 이회영 이야기를 발굴해 내며,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회영의 삶뿐 아니라 근대사 전반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 65세 된 노인이, 온몸을 던져 일제와 맞서겠다는 마지막 신념으로,
만주로 가는 배 밑바닥으로 발길을 옮길 때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1932년, 이회영은 침체된 독립운동을 다시 일으키고자 만주 대련으로 향하며 말했다. “젊은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에 뛰어들었는데, 나는 벌써 나이가 육십이 넘어 칠십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이렇게 앉아서 늙어 죽기만을 기다린다면 그 젊은 동지들에게 짐밖에 되지 않을 테니, 부끄럽고 면목 없는 일이다.”
이회영은 일생을 이런 생각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동지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백성을 향한 미안함으로, 시대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회영은 부끄러워했고, 가장 험하고 낮은 곳으로 향했다. [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지위와 재산 그리고 목숨까지 전부를 바치고 간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삶을 절절하고 감동적으로 그려 낸다. 또한 이회영과 관계 맺고 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업적을 다시 씀으로써,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독립운동가들을 기린다. 이회영과 독립운동가들의 애달프고도 용감했던 삶 이야기가 우리 가슴을 애절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감동하게 한다.

이회영과 독립운동가들의 삶 속에서 발견하는 우리 근대사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 줄잡아 60명 넘는 일행이 서울을 떠나 압록강을 건넜다. 한시도 일본 치하에서 살고 싶지 않았던 이회영과 일가족이 지금 돈으로 6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정리한 후 서둘러 떠난 망명길이었다. 이회영은 이항복의 11세 후손으로, 명문대가에서 태어나 한평생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라와 백성의 비운 앞에서 자신이 가진 특권을 스스로, 기꺼이 내려놓고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망명 후 이회영은 가지고 간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쳤다. 결국 입을 옷마저 전당포에 맡겨야 했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고, 일본 밀정들의 감시와 위협 속에 살았다. 하지만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을 배반하고 돌아설 때조차 이회영은 굳건했다. 그는 암울한 시대와 백성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 목숨마저 내준들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회영은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거나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지만, 우리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신민회, 헤이그 특사 파견 사건, 고종의 망명 계획과 3.1운동, 무장 독립 투쟁 등 의미 있는 사건 가운데 이회영의 숨결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해 낸 ‘신흥무관학교’나 아나키스트들의 요람 ‘남화한인청년연맹’ 등의 중심에도 늘 이회영이 있었다. 사상과 노선이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대부분 이회영을 믿고 따랐고, 그래서 그는 북경을 찾는 누구에게나 얼마간 의지할 수 있는 그늘 넓은 정자나무 같은 사람으로 통했다.
이 책에서는 이회영의 일생뿐 아니라, 이회영과 평생을 함께했던 독립운동 동지들의 이야기와 업적도 다각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이회영과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였으며 ‘율곡 이이 선생을 뛰어넘을 재목’이라는 평을 들었으나, 이회영과 함께 모의한 헤이그 특사 파견 사건 이후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끝내 러시아에서 순국한 이상설의 이야기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또한 가난한 숯 장수 집안에서 자라나 스크랜턴 선교사의 집에 일꾼으로 들어갔다가 기독교 목사가 된 전덕기의 이야기가 감동을 전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길에 방치된 시체를 거두며 진정한 사랑을 베풀 길을 고민했던 전덕기 목사의 일생 속에서 당시 백성의 어려운 생활과 기득권자였던 친일 양반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낮은 곳에 머물며 조국의 독립을 고민했던 사람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이 밖에도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 상동교회에 모여 조국의 앞날을 논했던 지식인들 ‘상동파’,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와 임시정부에 반대해 북경에 모여 독립운동을 전개한 ‘북경파’, 그리고 백정기, 이규창, 엄형순 등의 아나키스트까지 이 책은 험난한 시대를 살다간 여러 인물 이야기를 담아낸다. 우리 근대사에 적힌 사건들을 독립운동가의 삶 하나하나로 구체적으로 연결하며, 독자들에게 시대의 고민과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 나라의 독립을 넘어 온 인간의 해방을 꿈꾼 사람
대대로 함께 살아온 노비를 해방시키고 노비에게도 존대했다는 이회영. 이회영이 품은 정치적인 이상은 모든 인간이 서로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대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자는 ‘아나키즘’이었다. 그는 신분 차별과 남녀 차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한 독립운동의 목적이 단순히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라를 되찾는다면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세계의 열강들이 식민지 다툼을 벌이던 제국주의 시대에 이회영은 자유와 평화를 이상으로 생각하고 이를 위해 투쟁한 선구자였다.
독자들은 이회영 이야기를 따라가며 독립운동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폭넓게 이해하고 근대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술국치 이후 100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 아이들은 이회영이 살았던 식민지 시절과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회영이 추구한 평등과 평화는 오늘날에도 우리 시대를 밝히는 귀한 등불이며, 우리 아이들이 견지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이회영의 일생은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조국과 동지, 자기 자신을 배반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험난하고도 꿋꿋한 삶 속에서 단단한 의지와 깊은 사랑, 진정한 용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회영, 내 것을 버려 모두를 구하다]는 이회영이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하며,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보이지 않는 나침반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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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ann.nate.com/talk/316841526   (<-- 클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열정적 혁명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지사(志士))